칼의 노래
칼의 노래 — 백의종군에서 노량까지, 이순신이 칼 한 자루로 건넌 마지막 1년 반
- 저자
- 김훈
- 출판사
- 문학동네
작가 소개
대학 시절 혼자 『난중일기』를 읽던 한 청년은 인간의 삶이 이토록 고통스러운 지옥임을 그때 알았다고 회고했습니다. 그 청년 김훈은 1973년 한국일보 기자로 출발해 시사저널 편집국장에 이르기까지 오래 언론에 몸담았지만, 2000년 한 인터뷰 발언으로 비난이 쏟아지자 그해 10월 회사를 떠났습니다. 『칼의 노래』 책머리에 그는 "2000년 가을에 나는 다시 초야로 돌아왔다. 나는 정의로운 자들의 세상과 작별하였다."라고 적었습니다. 그 지옥의 기록은 초야로 돌아온 그의 손에서 비로소 소설이 되었습니다.
책 속으로
- 1장 1장: 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 — 소설의 첫 문장. 1597년 정유년 음력 4월, 의금부에서 풀려나 백의종군 중인 이순신이 1인칭으로 말한다. 김훈은 '꽃은 피었다'를 며칠 고민 끝에 '꽃이 피었다'로 고쳤다 — 정서를 빼고 사실만 남기려고. 조사 하나에 이 소설의 문법이 다 들어 있다.
- 2장 2장: 두 개의 칼 — 그를 감옥에 넣은 것은 왜적이 아니라 그가 지킨 나라의 임금이었다. 정탁의 상소로 사형을 면한 몸. '적의 칼과 임금의 칼 사이에서 바다는 아득히 넓었고 나는 몸 둘 곳 없었다.' 이 소설이 끝까지 붙들고 가는 질문 — 두 개의 칼 사이에서, 그는 어디서 죽어야 하는가.
- 3장 3장: 칠천량, 그리고 열두 척 — 1597년 음력 7월 16일 칠천량. 원균의 함대가 하룻밤에 무너지고 전선 130여 척, 1만 3천여 명이 사라진다. 배설이 끌고 나온 배는 열두 척. 그를 죽이려던 조정이 다시 그에게 바다를 맡긴다.
- 4장 4장: 칼이 우는 소리 — 감정어를 쓰지 않고 사실만 적는 1인칭의 문장들. '징징징, 칼이 울어대는 울음이 들리는 듯했다.' 그가 든 칼은 무기가 아니라 그를 향해 우는 물건이다. 신화로 조형된 성웅을 해체한 소설이라는 평가.
- 5장 5장: 사지에서는 살 길이 없다 — 음력 9월 16일 울돌목. 열세 척으로 해협에 들어온 적선 백삼십여 척과 맞선다. '사지에서는 살 길이 없음을 알아야 한다. 그것이 아마도 살 길이다.' 이긴 날 밤에도 그의 문장은 기뻐하지 않는다.
- 6장 6장: 면은 어깨로 적의 칼을 받았다 — 명량 한 달 뒤 아산에서 셋째 아들 면이 전사했다는 편지가 온다. '면은 어깨로 적의 칼을 받았다. 적의 칼이 면의 몸을 세로로 갈랐다. 죽을 때, 면은 스물한 살이었다.' 감정을 한 글자도 쓰지 않은 문장. 매일 밤 같은 꿈 — '아버님, 저의 칼을 찾아주십시오.'
- 7장 7장: 끼니와 몸 — 영웅 서사가 지워지는 자리. '끼니는 어김없이 돌아왔다. 지나간 모든 끼니는 닥쳐올 단 한 끼니 앞에서 무효였다.' 이질과 식은땀, 여진의 죽음 앞에서 '목숨을 벨 수는 있지만 죽음을 벨 수는 없었다.' 그리고 여진을 둘러싼 오해 — 사료에 동침 기록은 없고, 작가는 '오직 소설로만 읽혀지기 바란다'고 적었다.
- 8장 8장: 우는 임금 — 선조는 칼을 든 적이 없다. 그는 운다. '임금의 울음은 정무(政務)와도 같았다.' 언어와 울음이 임금의 권력이었다. '나는 다만 임금의 칼에 죽기는 싫었다.'
- 9장 9장: 지금 싸움이 한창이다 — 1598년 음력 11월 19일 노량. 실록의 유언 '戰方急 愼勿言我死'를 소설은 '지금 싸움이 한창이다. 너는 내 죽었다는 말을 내지 말라.'로 옮긴다. 2장의 질문이 여기서 답을 얻는다 — 임금의 칼이 아니라 적의 칼 앞에서. '나는 내 자연사에 안도했다.' 면의 젖냄새와 여진의 몸 냄새가 화약 연기에 비벼져 멀어지고, 소설은 말줄임표로 끝난다.
- 10장 10장: 초야로 돌아온 사내 — 책 밖의 이야기. 2000년 가을 인터뷰 필화로 편집국장 자리를 내려놓은 쉰둘의 김훈이 현충사의 차가운 칼을 들여다보며 연필로 쓴 소설. 동인문학상 '한국문학에 벼락처럼 쏟아진 축복'. 3년간 21만 부 → 2004년 탄핵으로 직무가 정지된 대통령이 읽은 책으로 그해 50만 부, 6년 7개월 만에 100만 부. 영어판은 아직 없다 — LA 리뷰 오브 북스가 '영어로 출간된 적 없는 한국 최고의 생존 작가'로 불렀다.